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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글

크레이지아케이드의 인생을 논하기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래도 게임 한 판이 끝난 뒤의
 
You Lose
Win
 
과 같은 말들과 그걸 친히도 외쳐주는 아기자기한 목소리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게임사 측에서는 목소리가 사람 목소리가 아니네 유저들은 아니 이건 사람 목소리일 수밖에 없네 하는 약간 어이없을 수밖에 없는 논쟁이 오고가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내가 졌네
이겼네
 
하는 건 손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준 크레이지아케이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You Lose나 Win의 모양새나 목소리라 하는 것이 전자의 경우에는 아주 어두컴컴한 검은 색에 "ㅠㅠ"하는 듯한 목소리를 신음처럼 뽑아내고, 후자의 경우 하늘색 밝은 글씨체에 "빠밤밤, 윈!"하는 명랑한 목소리가 울리기 때문이다. 영어를 전혀 몰랐던 유치원생인 나에게도 그 정도 사실은 쉽게 간파해낼 추리 능력이 있었
 
다고 생각했는데
 
크레이지아케이드를 시작한 이후 모두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승과 패를 이렇게도 처절하게 각인시키고 모든 기록을 남겨 승률을 기록하는 크레이지아케이드의 시스템은 플레이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에 승과 패를 처절하게 기록하고 각인시키고 승리를 위한 나아감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켜버리기 시작했다. 승리는 좋은 것 패배는 나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자본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사람들 머릿속에 박아버릴 수 있었다.
 
크레이지아케이드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 크레이지아케이드의 캐릭터라고 불리는
 
다오
배찌
우니
마리드
모스
에띠
케피
디지니
 
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관한 것이었다.
 
캐릭터들은 게임이 이루어지는 3분 내내 요리조리 움직였다. 1P와 1P와 2P의 조종들으로 캐릭터들은 살아남기도 때로는 다른 누군가를 - 때론 그들과 똑같이 생긴 상대를 - 물 속에 가두고 잔인하게 죽여버렸다.
 
캐릭터의 도덕성은 사라졌다.
 
캐릭터는 철저히 플레이어의 로봇이 되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대로 움직이고, 스페이스바의 굵은 탄력으로 물풍선을 뽑아내고, 명령에 따라 죽고 죽이고 하는 일들은 어느새 캐릭터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게임에 승리했을 때 그들은 플레이어와 함께 방방 뛰어댔다. 승리에 분명히 한 몫 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렇게도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게임은 - 게임의 승패는 분명히
 
He Lose 가 아닌
You Lose 였고
 
승패의 기록은 캐릭터의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기록이었다.
 
그들은 승패를 향유할 권리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도덕성, 권리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캐릭터들은 마침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I가 아닌 누군가의 He로서 She로서 살아가야했고 남에게 조종당한 결과는 남의 승리와 패배였다.
 
캐릭터의 인생은 영원히 0승 0무 0패다.
 
그래도, 그래도 이것보단 낫겟지 하는 생각에
지는 것도 I이고
이기는 것도 I인 나의 삶에
감사히 여기는게 좋겠다고
살면서 위로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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