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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글

쓰레기같은 인간


반 년만의 방학을 다시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집에 왔거늘,

 
어머니께서 필요하신 신발을 사기 위해 번화가를 지나가었고 자동차를 타면서 가고 있었기에 나에게 인도란 끝없이 뒤로 지나가는 역행의 러닝머신같이만 보였던 것이다.
 
밤이었기에 인도 위의 사람들 물건들 실체들에 대하여 나의 상상력은 어떠한 제재도 받을 수 없었다. 새까만 밤은 다채로운 상상으로 명암과 색채를 갖추어갔고 그제서야 어둠은 상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온전히 빛과의 차별성을 둘 수 있었다. 밤은 적어도 그런 의미였다. 더욱이 여름방학 첫 날을 맞이한 첫 날 밤이라는 점에 대해서.
 
인도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수많은 빌딩과 간판과 벽돌 바닥과 매점과 가로등과 자동차와 인류. 인류는 분명히 인도 위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물과 비생물의 여집합이라는 틀에 갖혀 인도 위의 인류는 적절히 걸어가기만 하면서 사물과의 경계를 허물려고 애썼다. 항상 그렇듯이 애쓰는 일만큼 잘 되지 않는 일도 없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약간 달랐던 것 같다. 배려없는 인류가 함부로 내놓은 쓸데없는 쓰레기들 속에서 나는 쭈구려 앉아있던 한 사람을 발견했다. 구토를 하고 있었는지 혹은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무릎을 모아 앉아있었고 어둠의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인류 최고의 측은지심을 받아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 참 불쌍하다, 먹을 게 없어서 저렇게 털고 있나, 아니면 술 취하신 분이 저기서 하룻밤을 보내려 하시고 있나.
 
틀렸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다.
 
쓰레기라니, 아무리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이래두 쓰레기만 같은 인생을 살아도 저 사람을 쓰레기라 할 수는 없는거다.
 
아니, 진짜 쓰레기다.
 
보니까 정말 쓰레기다. 쓰레기더미 속에 쭈그려 앉아 있었던 것은 동종의 쓰레기 봉투였다. 사람같이 생긴 쓰레기라니, 무릎 모아 앉아 토하고 있던 쓰레기라니 상상력의 실체가 밝혀졌을 때의 이질감은 너무나도 컸다. 실체가 뻔히 보이는 상상력을 허하지 말라.
 
정말 사람같이 생겼다. 쓰레기가 저래도 되나? 사람의 권위를 넘보고 있는데도?
 
둘 중에 하나일거다. 사람 같은 쓰레기던지, 아니면 쓰레기 같은 사람이던지. 쓰레기가 함부로 사람이 될 수는 없을테고 쓰레기도 그리 원하지 않을테니까, 결국은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겠네.
 
둘은 무언의 동의를 나누었고 그리하여 조금은 울적해졌다. 사람은 어느새 비생물 쓰레기와 동종 취급을 받기도 하는구나. 하지만 부정은 하지 못하였기에 비생물과는 다른 역동적인 모습의 사람이라는 것에 대하여 조금은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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