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뉴스피드에다가 싸질리는 글도 '글'로 친다면 나는 지금까지 어찌 되었든 간에 작가였다는 소리가 된다. 솔직히 아무도 나를 작가로 생각치 않고, 심지어 나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인간들도 꽤 되는데, 특히 나를 곰으로 취급하는 말종들에게 엿을 선사하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차원이 높구나.", "미래가 든든하구나.", "나는 그대의 팬♥"이라고 지껄이는 사람들도 있길래, 살짝 경악하고 있다.
아무튼 내가 또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심심하기 때문이다. 심심해선 안 되는데 원래 심심함이라 하는 것은 그러하지 않아야할 상황에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종종 불안감을 동반하며, 그 불안감이라 함은 내가 심심할 때 공부하지 않음에 기인하고, 심심해서 공부하지 않는 한 이 감정이 지속될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여튼 열악한 환경 속에서의 심심함은 괜히 다른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 곤란한 존재라 해도 괜찮겠다.
원래는 글을 쓸 때에는 대충 삘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그것은 대부분 심오한 또는 재미있는 또는 쓸데없는 환타지 혹은 로맨스 소설을 읽고 나서야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글을 쓰는 것이 상당히 어색하고, 남들이 볼까 기이하고(물론 남들 보라고 올리는 글이긴 하지만), 메마른 감정 속에서 글을 쓰니 시간만 아깝진 않은가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불안감이 극한에 다다른다.
사실 지금은 누군가와 채팅을 하면서 글을 싸지르고 있는데, 채팅하면서 글을 쓰는게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가 내 글을 본다면 "이 친구, 대단하구만?"하고 인정해줄 것 같아 괜히 들떠있고, 또는 문장을 끝낼 생각은 않고 콤마나 남발하는 글을 보면서 짜증낼 독자의 반응이나 그들의 면상을 보니 통쾌하기도 하다. 독자들이란, 하하하!
채팅을 하면서 글을 쓰다가 갑자기 전화가 온다. 친구의 전화가 낡은 2G 휴대전화의 액정화면에 뜨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고민이 잠시 들었으나, 글을 마치고 채팅을 마치고 전화를 한다면 그는 화를 낼 것이고 개학 후 그를 보기 두려워질 것이며 내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근거를 제시한다면 그는 다시 한 번 화를 낼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한다. 심오한 고민 사이 올라온 채팅창의 채팅 내역을 입력하느라 바쁘고, 의미없는 글을 쓰느라 바쁘고, 이 와중에 울리는 휴대전화가 바쁘며 그렇게 심심함을 덜어내려는 나의 노력이 바쁘다.
채팅창에 아무렇게나 "ㅋㅋㅋㅋㅋㅋ"을 남발해놓았더니 이번에는 채팅창이 나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내가 올리는 채팅 내용 하나하나가 오류라 인식된다면서, 다시 입력해보거나 새로고침을 하거나 컴퓨터를 껐다 키라는 무례한 명령이 떨어지고, 하지만 새로고침 후에는 날아갈 38분의 이 글이 두려워 나는 무례하게 거부하고, 이 글을 보고 "이 친구는 '이상'인가?"하고 되물을 당신들의 반응만 기대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만이 존재할 뿐이니까.
무의식으로 글을 쓰려니 참으로 힘들다. 매번 페이스북에 들어오지 않아야지 상상하나 지키지 않는 나의 모습에 숨어있던 불안감이 증폭하고, 핵폭발을 일으키고, 안보리가 소집되어 대북제재를 결정하고, 박수치던 김정은이 분개하여 한국전쟁을 일으키고, 누군가는 다시 벙커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얻어 맞을 그 상황을 생각하니 고2때 조기졸업할 내 친구가 더욱 부러워진다. 오징어젓갈을 저녁으로 먹었던 1시간 반 전의 상황을 생각하며 내가 그 때로 돌아간다면, 페북을 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시리 기뻐진다.
기뻐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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